기침 - 정영효
예감에 대해 묻는다면 대답 대신 기침을 할 수도 있다
기다려도 오지 않고 오고 나면 지나칠 수 없는
기침은 내가 따르지 못하는 순서
앞뒤를 감당할 수 없는 조짐처럼
나와 무관했지만 내게서 시작되는
짧은 휴식이거나 오래된 피로 같은 것
모든 골목이 빛을 닫고 무너질 때
저녁이 무성한 잡념들을 거두면
나는 견고해지는 어둠 속에서 기침을 기다린다
아니 예감을 준비하며
나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침은 끝이 아닌 계속의 형식
죽어가는 이의 기침에선 다른 생이 태어나고
기침이 지나간 자리에는 희미한 파문이 남을 수도 있다
가령 그의 유언은 기침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기록하지 못했다
사라지면 돌아오는 고요 같은
어떤 생략과 반복을 느꼈을 뿐
그것이 윤회나 이생에 대한 믿음이었다면
나 역시 기침으로 대답하는 수밖에
침착함과는 거리가 먼
결론은 없으나 결단을 해야 하는
기침이 나오는 순간, 그 짧은 외도에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 문학동네
독감 - 정영효
독감에 걸린 새들의 고향은 멀다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상의하며
계절의 뒤를 찾아 그들이 어둠을 짚을 때
바람은 시린 부리를 기억하면서 두통을 앓고
날개의 끝에서 시작된 새벽이 인간의 지붕으로 내려앉는다
그러나 독감으로 뒤척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입맛을 떠올려보거나
축 늘어진 성기를 위로하는 것
불시에 찾아오는 기침을 밤새 외우며 통증을 눕혀주는 것
변방처럼 쓸쓸한 이불 속에서
나는 가장 단순하고 겸손해지므로
독감을 앓으면 자신의 체질을 묵독할 수 있고
무력하지만
친절에 대한 하나의 방식을 깨달을 수도 있다
육감을 가진 새들과는 달리 사람의 대책이란 고작 반복해야 하는 다짐들
독감에 지쳐 목이 어두워지는 건
이미 늦어버린 친절을 배우고 있기 때문인지
밤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더욱 불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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