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상한 안부 - 김형미

마루안 2019. 3. 20. 22:02



무상한 안부 - 김형미



봄 환절기 땐 사람이 자주 떠난다고
녹매화 벙그는
서해 어디 이름 모를 마을 뒷산으로 가서
멀쩡했던 사람도 쓰러져 눕는다고
그렇게 조금씩 곁이 비어
생이 더욱 허적해진다고
끊임없이 위독한 바람은 불어와
한 깊은 영혼들은
서해 어디 이름 모를 마을 뒷산으로 가서
연초록 녹매화로 다시 피어난다고
덜컥 내려앉은 심장을 추키며
저마다의 일생을 살기 위해
별수 없이 산 것들은 무릎을 편다고
봄 환절기 땐
세월도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또 그렇게 무상한 세월은 가는 거라고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 푸른사상사








봄 - 김형미



내 속에 살아 있는 것들이 환절기를 앓는다
심장에 생강편 한쪽 물려 있는 듯
맵고 아린 통증이 되살아와
검고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넘어다보고 있는 오후의 시간 속에서
나는 자주 죽어가는 사람의 공포를 느꼈다
집 앞 홍매화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가 다녀간 지 오래된 낮은 문턱마다
빈방의 정적이 깊고
간혹 그 깊이만큼 배가 고파지기도 했으나
어차피 혼자 먹는 밥은 살로 가지 않았다
그럴수록 공기 속에 들어 있는 어떤 무서운 존재가
어깨를 무겁게 찍어 눌러
나는 한 십 년쯤 묵은 기침을 돋우어냈는데
내 살빛 한 점씩 바래가는 오후의 시간 사이로
비스듬히 걸어오는 저,
저 새파라니 젊은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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