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곳에 서서 - 정의태
한 천년을 지나온 듯
그 맘속에 가만히 들어서고 싶다
아침햇살이 바다 이 편에 닿기 전
그 적요한 틈에서 비켜난 한 움큼
해맑은 눈빛으로
그 맘속에 닿고 그 눈길에 적셔지고 싶다
해가 지든 달이 뜨든
이 한 곳에 서서
그 마음이 지나는 자리마다
달빛처럼 섰고 싶다
달빛의 설레임 마냥 비치고 싶다
푸르른 녹음 어디서나 새가 울고
강 언덕 가차운 들녘
꽃들이 흐드러진 길 따라
세상 어디에 놓여 지든
그 마음 곁일 수만 있다면
*시집, 세상의 땀구멍, 도서출판 전망
그 산다화 - 정의태
사랑을 사랑이라 이름 짓지 않은 꽃이
겨울을 붙들고 있다
바람을, 배고플 겨를 없는 혹한을 비벼 끄기 위하여
담배연기 뿜듯 허공을 당기는 입김들
- 사람들의 발길은 그 눈길만큼 착하지 못해
아픈 이들의 통증을 되뇌이며 거리를 비켜서서
아득한 동정을 그리워하며
겨울보다 못한 햇살에게서 도망쳐 나온
한 줌 설움 같은 꽃
눈물 삼키는 밤을 위하여는 별빛도 부르지 말자
한 방 가득 어버이 없는 아이들이 울다
창 너머로 맞는 새벽
- 잠든 아이들에겐 안겨 줄 것이 없어, 꿈 밖에 없어
길의 길에 나와 앉은 어린 어미 같은 너
죽은 슬픔 같은
# 정의태 시인은 부산 출생으로 1986년 시집 <고독한 자의 수레>, 1989년 동인지 <문예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한글문학> 15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제 우리 가깝다 하나>, <섬에 와 섬이 된다>, <네가 이 세상에 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 <까치는 늘 갈 곳이 있다> 등이 있다. 작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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