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간이 걸터앉은 흔들의자 - 서상만

마루안 2019. 3. 20. 21:53



시간이 걸터앉은 흔들의자 - 서상만



날지 못하는 새는 공중에 없다
달빛 아래, 콩밭 머리 헤매는 작은 새여
비상에 길들지 못한 날갯짓, 아픈
너에게는 하늘 향한 그리움만 있다


너는
저 별빛을 놓칠까 봐 늘 깨어 있기에
깊은 밤을 아는 듯


바람 일면, 회랑에 걸린 낡은 벽시계도
흔들의자에 걸터앉아
흘러간 추억을 노래하고


귀 기울이면 불현듯
멀리 검푸른 밤바다 무덤 위로
무거운 삶이 꽃잎처럼 지고 있다


좌아좌아 파도로 흩어지며
포말을 토하며 뭍으로
뭍으로 잦아드는 절망의 잠


한밤중
애잔한 새에게 무슨 말로 속삭일까


사랑이여, 이승의 끝에 매달린 목숨
누구에게 맡길까
누가 대신 울어줄까



*시집, 늦귀, 책만드는집








저물 곳 - 서상만



풀벌레 소리로 배부른 가을밤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주먹만 한 별빛을 받아안고
잠이 들 때도
내 아버지 구성진 명당경 소리는
곳간에 숨어 사는
집 지킴이 누렁 뱀의 안광을
더 순하게 길들였지


구름 말랭이에 누운 타향살이,
나 오랫동안 잊어버린
푸른 별을 더듬어본다
평생 마음의 집 한 채 짓지 못해
일찌감치 접어둔 나의 꿈
이제 고만 저물 곳이 어딘지





*시인의 말


나는 절필하지 않으려
지금껏 살아 있다


가물대는
저, 노란 불빛
神과의 면회도


八이 가까우니
겨우, 알 듯도 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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