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등짝이 가렵다 - 이오우

마루안 2019. 3. 18. 21:56



등짝이 가렵다 - 이오우



1

꼭 한 번은 그렇게 가려운 때가 있다
아무리 휘저어도 닿지 않는 지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가려움
참아 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미치도록 가려운 때가 있다
냉큼 긁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그곳


2

어느 허름한 목욕탕
돌아가는 원판에 때수건을 붙여놓았다
노인은 볼품없이 등짝을 붙이고 등을 밀고 있다
때밀이에게 댈 돈이 없는 노인을 위한
목욕탕집 주인의 배려가 고맙기도 하지만
때를 밀기보다 등짝이 가려운 것만 같다


3

나이 들수록 등짝도 자주 가려운 법
목욕탕부터 집집마다 등짝 한번
시원하게 맡길 사람 없이 지내는
홀로 아리랑이 많은 요즘
등짝이 가려운 때가 있다
마음의 등짝이 가려운 때가 있다



*시집, 어둠을 켜다, 문학의전당








낙엽 - 이오우



낙엽이 산길을 덮었다
중심에서 떨어져 나온 이단자들
발아래 부서진다
아류 인생이기보다는
하루 인생이고자
신인류를 위해 스스로
반역자가 되어버린 듯
무참히 베어진 목숨들
그들은 자발적 폐허를 꿈꿨다
여기저기 아직 가시지 않은
높푸른 귀족의 냄새
발걸음마다 발기하는 투명한 암호
어둠을 깨치는 법어인 양
소멸은 이토록 깨끗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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