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산다는 건 - 김시종

마루안 2019. 3. 17. 19:01



산다는 건 - 김시종



무의 존명력(存命力)이

인간의 삶에 암시를 주는 듯하다.

불사신인 그 몸은

몸이 잘려 나가고 속을 도려내어도

한 되 십전의 수돗물

몇 방울 물에 행복해 하는 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다.

게다가 거꾸로 매달려서

く모양으로 구부러져서 싹을 위로 솟아나게 하는 모양은

엄청난 교훈을 자각하게 한다고 하지.


산다는 건 어려운 일,

응달에서 시들고

생기가 뽑혀나가도

산다는 건 고귀한 것이지, 

이번에만 살아남는다고 하는

잎사귀

참 노랗지 않은가.

왕성한 생명력이

교훈을 위해 산제물이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철학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적어도 내 삶은

습성이 아니다.



*시집, 지평선, 소명출판








내핍생활 - 김시종



헌 신문을 휴지 대신으로밖에 쓰지 못할 정도로

비경제적인 나다.

포장을 하려 해도 중요한 알맹이가 없기에

그저 화장실로 직행이다.

바스락바스락 하는 녀석을 손바닥에 동그랗게 말아서

우선 그 팽팽함을 죽인다.

그것을 서서히 다시 펴면서

두세 줄 읽는 사이에

일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우연히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씨의 "내핍생활론"과 맞닥뜨리게 됐다.

무엇이든 참고 견뎌야 한다!

넓적다리로부터 한일자처럼 똑바로

위쪽을 향해 똥을 닦아내는 중에

요시다 씨는 여전히 우쭐대며 싱글거리면서 엽궐련을 입에 문 채로

극히 지르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요시다 씨여, 용서해 주오.

그런 기분은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오.



*역자 주: 요시다 시게루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가 중의 한 명이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두 번째로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일본의 처칠로 불리기도 했다.





自序


자신만의 아침을 

너는 바라서는 안 된다.

빛이 드는 곳이 있으면 흐린 곳이 있는 법이다.

붕괴돼 사라지지 않을 지구의 회전이야말로

너는 믿기만 하면 된다.

태양은 네 발 아래에서 떠오른다.

그것이 큰 활 모양을 그리며

정반대 네 발 아래로 가라앉아간다.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지평이다.

틀림없는 지평이다.

멀리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저물어가는 석양에 안녕을 고해야 한다.


진정 새로운 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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