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 김시종
무의 존명력(存命力)이
인간의 삶에 암시를 주는 듯하다.
불사신인 그 몸은
몸이 잘려 나가고 속을 도려내어도
한 되 십전의 수돗물
몇 방울 물에 행복해 하는 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다.
게다가 거꾸로 매달려서
く모양으로 구부러져서 싹을 위로 솟아나게 하는 모양은
엄청난 교훈을 자각하게 한다고 하지.
산다는 건 어려운 일,
응달에서 시들고
생기가 뽑혀나가도
산다는 건 고귀한 것이지,
이번에만 살아남는다고 하는
잎사귀
참 노랗지 않은가.
왕성한 생명력이
교훈을 위해 산제물이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철학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적어도 내 삶은
습성이 아니다.
*시집, 지평선, 소명출판
내핍생활 - 김시종
헌 신문을 휴지 대신으로밖에 쓰지 못할 정도로
비경제적인 나다.
포장을 하려 해도 중요한 알맹이가 없기에
그저 화장실로 직행이다.
바스락바스락 하는 녀석을 손바닥에 동그랗게 말아서
우선 그 팽팽함을 죽인다.
그것을 서서히 다시 펴면서
두세 줄 읽는 사이에
일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우연히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씨의 "내핍생활론"과 맞닥뜨리게 됐다.
무엇이든 참고 견뎌야 한다!
넓적다리로부터 한일자처럼 똑바로
위쪽을 향해 똥을 닦아내는 중에
요시다 씨는 여전히 우쭐대며 싱글거리면서 엽궐련을 입에 문 채로
극히 지르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요시다 씨여, 용서해 주오.
그런 기분은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오.
*역자 주: 요시다 시게루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가 중의 한 명이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두 번째로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일본의 처칠로 불리기도 했다.
自序
자신만의 아침을
너는 바라서는 안 된다.
빛이 드는 곳이 있으면 흐린 곳이 있는 법이다.
붕괴돼 사라지지 않을 지구의 회전이야말로
너는 믿기만 하면 된다.
태양은 네 발 아래에서 떠오른다.
그것이 큰 활 모양을 그리며
정반대 네 발 아래로 가라앉아간다.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지평이다.
틀림없는 지평이다.
멀리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저물어가는 석양에 안녕을 고해야 한다.
진정 새로운 밤이 기다리고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숙한 미로 - 차주일 (0) | 2019.03.18 |
---|---|
동백이 지고 나면 - 김태형 (0) | 2019.03.17 |
손수건 - 변홍철 (0) | 2019.03.17 |
푸른 물의 시 - 김광섭 (0) | 2019.03.17 |
막차 - 사윤수 (0) | 201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