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미로 - 차주일
쪼그려 앉은 노인이 골목길에 엉켜 있다.
탯줄에 매달린 사람의 처음 같다.
팔로 다리를 껴안아 준 미로는
시작이거나 끝이거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살았노라 자부하던 사람이
자신을 회고하는 모습은 얼마나 복잡다난한가.
익숙한 미래를 좀체 벗어나지 못함은
다른 길들이 뒤엉켜 있다는 말.
자신을 찾아 자신을 헤맨 일생이
타인들의 노정과 판박이었으므로
자신을 회고하는 제자리를 완주라 말해도 되겠다.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타인이라 말해도 되겠다.
입구를 출구라 말해도 되겠다.
*시집,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포지션
노구 - 차주일
얼굴과 양 손바닥이 서로 묻고 있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서서 한참 동안
응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정표가 틈 하나 맞대어 세월을 감별하는 것처럼
얼굴 주름과 손금을 맞대보고 있다.
운명에 없던 마음을 수행한
얼굴이 양손 앞에 조아리고
눈주름이 사람의 풀이말로 판독되어
양손 또한 풀려난다.
얼굴에 마음 한 문장 삐뚤다.
마음을 궁리하는 합장의 틈도 삐뚤다.
삐뚠 게 바로 해석되는 시간이 시작된다.
노구가 삐뚠 것은 마음을 척추 삼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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