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막차 - 사윤수

마루안 2019. 3. 16. 22:15



막차 - 사윤수



서로 새댁시절에 친구였던 그미를

십오 년 만에 재회 하였다

옛 애인이 그리워, 가족을 재워두고

먼먼 부두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가던 그미가

갈릴리 푸른 바다를 건너온 듯 했다

나를 영혼의 고아라 부르며

매점에서 산 삶은 계란을 고이 까준다

그미가 들려주는 복음을 타고

나는 푸른 풀밭에 누웠다가

잔잔한 물가로 인도 되었다가

그토록 기다리던 구원이 드디어 눈앞이라

이제 그미의 손을 잡기만 하면

천국이 멀지 않겠는데

누군가 분실한 축복을 그곳에 두고

나는 어디선가 막차를 그냥 보내는 것이었다

먼 훗날,

낯선 처마 밑에서 겨울비를 긋는

남루한 내 영혼이 휙 지나가는 것도 같았다



*시집, 파온, 최측의농간








마포종점 - 사윤수



그곳이 어디쯤인지 짐작되지만 나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없다 남자가 내게 물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마포종점이라고 했다 내게 마포종점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오래 전 가요무대에 그 노래가 나왔을 때 화면엔 일기예보 자막이 스멀스멀 지나가고 있었다 고드름처럼 두꺼운 영하의 온도 숫자와 폭설주의보가 계속 반복되었다 아픈 시 같았다 어디선가 마포가 새하얗게 절규하며 얼어붙는 밤이었을 것이다

남자가 내게 물었다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마포종점을 부른 은방울자매라고 대답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그는 곧바로 떠나갔다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종점에 서서 갈길 없는 밤 전차가 되었다 몇 년 전 자매 가운데 한 사람이 세상과 이별했다 부처 같은 나의 큰 이모를 닮은 그녀, 포구의 강물이 여전히 내가 가 본 적 없는 영등포와 여의도와 당인리 발전소에까지 쓸쓸히 젖어들었겠다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마포 나루에 서 있는 흑백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 마포종점이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고 싶지 않다 그것에 대해 내게 말하지 말라 다만, 노래에 관한 얘기라면 나는 마포종점을 빼놓을 수 없다 마포종점도 불멸의 클래식이므로 나는 그 힘으로 견딜만하다 서글프지 않으니 나의 마포는






# 사윤수 시인은 1964년 경북 청도 출생으로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파온婆媼>이 첫 시집이다. 남자 이름처럼 보이나 여성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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