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건너간다 - 황학주
이삿집을 구하는 날이었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차가 멎자
두 그루 벼랑집이 기울고 있었다
시간의 가산을 거진 팔아
겨울 햇살 꼭대기에 까치를 들인
포플러나무
오, 구부러지고 들어간 저녁빛에 코를 묻고
호리호리한 몸매를 기대고 있었다
금빛 옷 한 벌이 하나씩 입혀지는 것만 같아!
날개 무거운 새가 눈망울에 끌어안는
환하게 번진 일몰 뒤로
포플러나무는 쪽배처럼 그냥 기울어진다
나무들은 그렇게 세상을 건너간다
막무가내 등을 기대고
이 땅에는 한 그루도 없는 영원을 수줍어하며
금빛 구름뭉치 밑의 두 그루 나무
서로 해진 무릎에 가죽을 대주고 있다
텅 빈 공중 문을 닫으며
*활학주 시집, 루시, 솔출판사
달방 - 황학주
달이 대중목욕탕 앞 은행나무 위로 뜨자
예쁘고 길쭉한 과일처럼 생긴 젊은 여자와
땅에 끌려 너덜너덜해진 잎사귀 같은
늙은 여자가 함께 보고 있다
젖가슴처럼 아름답게 올라가는
달이 들어간 구석
슬픔을 냄비처럼 손바닥으로 감싸 안고
누이와 밴드마스터들은 야간업소에서 사장으로 흘러나오고
건더기 채로 돌아다니는 추운 건달들도
안으로 하나씩 달을 매달고 그만 자러 들어가는
재래시장 뒷길에 곧 성탄절이 찾아오는
골방이 있었다 방안 가득
고봉밥으로 담긴 달빛이 전축을 틀며 익어갔다
당신이 밤마다 노랗게 여물고 둥글게 안아져
눈을 뜨지 못하던 밤들
모든 것을 다 줘버린 사람들이
서로에게만 추억되듯이
달이 있던 자리에 단풍 든 잎을 붙여놓고
나무 밑동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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