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금지구역 - 권수진
영역싸움에서 밀려난 멧돼지 무리들이
산중을 뛰쳐나와 거리를 활보하네
이곳은 너희들이 넘볼 수 없는 금단의 구역
함부로 설쳤다간 총살이 제격이지
저것 봐, 어슬렁어슬렁 도로변을 배회하던
네 옆의 동료가 차에 치어 쓰러지잖아
그러니 아무 때나 까불지 말고
각자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렴
뚱뚱하고 못생긴 것들을 증오하는 세상 속에서
태생이 서로 다른 종족으로 태어났으니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직업군은 너희 몫이야
환절기엔 산천을 이리저리 떠돌면서
어금니로 부지런히 먹잇감이나 찾아다녀
네 입에 풀칠할 끼니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도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살고 있니
다산(多産)까지 꿈꾸는 가소로운 것
촛불 따위를 든다고 성벽이 무너지진 않아
여긴 철밥통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가득하니까
정말로 억울하면 한번 넘어와 봐
목숨을 걸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권수진 시집, 철학적인 하루, 시산맥사
겨울, 섬진강 - 권수진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소름이 이빨처럼 돋아나는
그대 눈물 속에 잠시 발을 담근 적 있다
꽁꽁 얼어붙은 강물은 차가웠다
태양 주변을 서성이듯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밤하늘의 별들이 서광처럼 빛났다
강은 깊을수록 말이 없고, 강의 가장자리
여울목만 세차게 울어 젖혔다
당신의 눈물에 더 이상 속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시 화창한 봄날을 펼쳐 놓고
말 못할 사연 지긋지긋할 정도로 썼다
건널 수 없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린 바람이 내 심장을 할퀴고 지나갔다
꽃을 심어야 할 그 자리에 꽂은 칼은
선홍빛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갔다
아파도 모르는 척 무덤덤하게
강 건너 저편에 서 있는 그대를 바라보았다
도도한 강물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구름이 바람처럼 떠도는 이유를 잘 모른다
한때, 외투를 벗어도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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