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캄캄한 식사 - 김주대

마루안 2018. 12. 22. 21:33

 

 

캄캄한 식사 - 김주대

-도둑고양이

 

 

철없던 어제와 불길한 내일 사이

굽은 등뼈의 꿈으로 달렸다

암석 같은 생활 막다른 골목을

키보다 높이 절망보다 빠른 속도로 넘다보면

반죽 같은 살점 사이로 흘러나오는 발톱

생계(生計)의 흔적이 날카로웠다

 

몸보다 느린 정신을

주택의 불빛 속에 놓치기도 하면서

낮고 쓸쓸한 잔등의 털이 일으키는

소름 돋는 외로움에

사람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먼 곳을 살았다

 

허기진 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서

잊혀진 것들을 뒤지며 울던 캄캄한 식사

발톱을 세워

주섬주섬 싸 담던 식구들의 연명

 

한 번쯤 저 높은 생계(生計)를 훌쩍 넘어

노래 부르고 싶었지만

눈물 같은 불이 흐르는 어둠의 경계를 넘어

달빛을 타고 달리고 싶었지만

오래 사육된 기억은

어둠의 끝까지 울부짖지 못했다

 

 

*시집, 꽃이 너를 지운다, 천년의시작

 

 

 

 

 

 

울음에는 그리운 것들을 부르는 힘줄이 보인다 - 김주대
-도둑고양이 2


녹슨 세월 방울소리 울리며
건달 간다
바람 같은 허리
솜처럼 가벼운 앞발에 허기가 붙어 있다
때로 불량한 발정기에
눈동자마다 철철 흐르던 불으 삼키며 울며
간다
울음에는 그리운 것들을 부르는 힘줄이 보인다

골목마다 버려진 부패한 추억
무너진 도덕의 경계에서 훔친 끼니를 물어
새끼들 울부짖는 폐가의 계단을 내려서는
하루 한 번의 인간다움
본능의 크기대로 벌린 새끼들 아가리에
하루를 넣어주고 하루가 간다

잠든 새끼들 몰래 계단을 오르는 고요한
앞발의 탄력
야밤을 틈타 바람처럼 가정을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부드러운 몸놀림
발톱은
부양해야 할 새끼들에 대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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