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평의 방.1 - 최준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저 블럭 담장 위
제 몸을 초개같이 갈갈이 부숴
최종 수비라인 이루는
뾰족 유리조각들 너머
내 꺼 아닌 세상에서 훌쩍
허락 없이 월담해 들어오는 햇빛 좀 봐
그래도 살지 않을래?
죽음을 꿈꾼 아침
패널 속의 낙타가 사막을 걸어가는
두 평의 방
담배 찾아 바닥 더듬는 손이
물컹, 쏟아진 캔의 참치살을 만진다
바다에서 사막으로
순간이동 해 버린 살덩이
뼈는 어디에 묻혔나
두 평의 방
거기 한 살덩이의 무덤이 있었다고
죽음으로 가고 있던 삶이
아닌, 죽음을 살았던 삶이
도굴범이 파헤친
두 평의 무덤!
*시집,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고려원
두 평의 방.2 - 최준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사내는 올드 스파이스 스킨을
파란 턱에 바른다
저 낯선 사람!
거울 속에서 자신의 턱을 만지는
삼십대의 사내
내 무덤을 한낮의 어머니가 훔쳐보신 것
종3 사무실 뒷골목에서
낙지전골을 먹던 그 시간쯤
어머니가 내 무덤을 다녀가신 것
床石을 머리에 이고 다닌
사무자동화의 시간에
어머니는 시체 없는 빈 무덤을
방문하셨던 것
애호박찌개가 있고, 겉절이 배추김치가 있다
오오, 이 새로운 부장품들!
바라보기만 해도 시체의 배는 부른데
자신을 응시하던 눈이 힐끗
벽을 보았던 것일까
다시 사막의 처음으로 돌아온
패널 속 늙은 낙타를,
저 검은 눈 속의
누적된 피로를,
# 20년도 더 지난 오래 전의 시집이다. 출판사 고려원은 시에 눈을 뜨게 해준 출판사였다. 고려원과 세계사. 청하출판사, 푸른숲 등에서도 좋은 시집을 많이 냈다. 그때 고려원은 신간이 나오면 TV 광고에 나올 정도로 막강한 출판사였다. 낙원동 악기상가 뒤편쯤에 고려원 건물이 있었는데 가끔 문학강좌에 참가하기도 했다. 시집 날개에 공감이 가는 구절이 있어서 옮긴다. 지금 읽어도 현실과 딱 들어 맞는 문장이다.
*이 시대를 물들이는 것은 세기말의 허무주의다. 그 동안 신앙처럼 믿어 온 이성이 회의의 대상이 되고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인간의 삶이 물화(物化)의 길로 치닫는 위기의 시대,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성을 뛰어넘는 싱싱한 미적 감성의 세계이다.
미적 감성이 노리는 것은 사물에 대한 미적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기술이 지배하는 삶의 모순을 극복함에 있다. 건전한 감성이야말로 인간적 이성을 회복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위대한 비평가는 시인을 가리켜 <사랑의 입법자>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시인을 가치 있는 <감성의 입법자>라 고쳐 부르기로 한다.
우리가 <고려원현대시인선>을 기획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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