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최서림

마루안 2018. 12. 16. 19:20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최서림



드디어 귀향 한다고
해방된 듯이 그대는 수다스럽고,
나는 부러워하면서도 왠지
쓸쓸하게 손을 흔들어 떠나보내네.


빈손으로 귀촌 한다고
쫓기듯 서울에서 빠져나간다고
낮달같이 희미하게 웃는 그대를 보내고
낙엽 진 거리의 플라타너스처럼 우두커니 서있네.


어딜 가나 인간 세상 안쪽인데,
무한경쟁의 갈퀴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틈으로 숨어들기를!


낙엽처럼 떨어진 희망 쪼가리를 밟으며
나는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리.
이곳에 있어도 영원히 이곳에 속하지 않는 망명자,
자본의 심장부에다 '말'폭탄을 던지는 시인은
이 시대 마지막 레지스탕스라네.


이 밤 돌아오지 못할 카테리니로 떠나는 것은
그대가 아니라 나일세.
내 심장이 버티는 한
내 유일한 무기 볼펜과 노트를 가지고서
희망 없는 이 땅에 살아남아 있으리.
절망 한가운데로 실뿌리를 뻗어 보리.



*시집, 시인의 재산, 지혜출판








삼천포 - 최서림



몸에 항구를 지닌 여인들은 사월이면
엉덩이가 삼천포 앞바다 만해지곤 했었다.
쫓기는 남자들이 살그머니 들어와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다가곤 했었다.
무언가를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듯,
죽어서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갈치처럼 날을 세워 잠들곤 했었다.
NL도 PD도 몰라서 더 큰 여자들,
여자가 아닌 여인들의 바다가 있었다.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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