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평균치로의 입성을 꿈꾸며 - 김상철

마루안 2018. 12. 14. 21:59

 

 

평균치로의 입성을 꿈꾸며 - 김상철

 

 

정부는 인구 억제책으로 유전인자가 불량한 자의

대를 끊기로 결정하였다 표준미달의 사람들이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인권단체와 전국 대학에선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국회의 표결을 앞두고는 있으나

이번 결정의 번복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언론은 전한다

정부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다

나는 색약과 수족이 짧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조만간

정부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생식기를 파괴하는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다

주류업계는 아비규환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시집, 흙이 도톰한 마당에 대한 기억, 고두미

 

 

 

 

 

 

또 하나의 증거 - 김상철

 

 

남자는 돈을 벌기로 하고 여자는 살림을 하기로 하고 둘이는 둥지를 틀었습니다. 금실은 좋았는데요. 얘기가 없었답니다. 데려다 기르기로 하였지요. 큰애는 딸 작은 애는 아들, 남매는 그들 소꿉장난 같은 가정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공사판이 전성기를 이룰 때 남자는 잘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여자는 손맛이 맛깔스러워 소문을 일으킬 지경이었고, 아이들은 대추마냥 톡톡히 살이 올랐습니다. 항상 그렇듯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와 왼팔 오른팔 그 옹골진 팔뚝에 아이들을 안을 때 남자는 그 털털한 웃음을 껄껄거렸고 여자는 또 그 맛깔스런 웃음으로 깔깔거렸습니다.

 

술이 간을 못쓰게 만들었을 때 남자는 쓰러졌습니다. 여자는 역할을 바꾸어서 일터로 나갔는데요, 저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을 쉽게 저질러버리는 젊은 사내와 눈을 맞추고는 그만 야반도주를 놓았답니다. 아주 엉겁결이었습니다. 딸년은 사춘기의 중턱에 이르러 가출을 하였고요, 별로 슬퍼할 줄 모르는 아들 녀석은 멀뚱한 눈으로 밥그릇만 비웠습니다.

 

노란 꽃 같기도 했고 파란 꽃 같기도 했던 둥지가 풍비박산이 나고는 가망이 없었습니다. 흔히 그렇듯이 습관 반, 울화통 반으로 남자는 결단난 간을 꽉 부여잡고 술을 펐죠. 살들은 자꾸 뼈를 떠났고..... 이웃들의 동정이 한 사나흘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집 단장을 곱게 한 뒤 아무도 없을 때 사내는 그 집 시멘마루 위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사내의 하얀 구두가 사나흘 빈집을 지키더니 그 후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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