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을을 지나는 법 - 나호열

마루안 2018. 11. 8. 21:59



가을을 지나는 법 - 나호열



가을은 느린 호흡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도보여행자


점자를 더듬듯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오래 마음 물들이다가

투우욱
떨어지는 눈물같이
곁을 스치며 지나간다


망설이며 기다렸던 해후의
목멘 짧은 문장은
그새 잊어버리고
내 몸에 던져진 자음 몇 개를
또 어디에 숨겨야 하나


야윈 외투 같은 그림자를 앞세우고
길 없는 길을 걸어가는
가을
도보여행자


이제 남은 것은
채 한토막이 남지 않은
생의 촛불
바람이라는 모음


맑다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문학의전당








모텔 아도니스 - 나호열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은
소년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다가서면 누구나 붉음으로 물들어버릴 것 같은
길가의 저 사내 때문에
신호등이 없어도 멈칫 서게 되는
비밀 하나를 감추고 가을을 지나간다


비밀은 나눌 수 없는
혼자만의 것
잘 익은 와인이 되거나
마지막 잎새가 되는 것


사랑이란 이름의 바람 한 줄
누군가의 영혼에 잠시 닿았다
사라지는 물결 몇 마디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연꽃이 져 가는
그와 같은 비밀을
나누어주고 있는 저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