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로수 - 남덕현
수명을 다한 바람이 무덤을 찾아드는가
시리고 눈물이 난다
내 눈이 바람의 무덤이라니
낡은 눈이 이런 쓸모가 있다
나무도 바람의 무덤인가
삭풍 불기 전
봄에 태어나 가을에 죽는
행복한 바람들
저 춤추는 잎들의 흥겨운 조문
나무마다 호상이구나
*시집/ 유랑/ 노마드북스
가을 - 남덕현
풀잎 순해져 손 베일 일 없고
이슬은 끈적이지 않아 좋아라
탁하지 않은 칠흑 속에서
달 없이 물빛 홀로 맑다
한 차례 더 비 내려
짙은 여름 꽃물
다 빠지면
색 바랜 셔츠에서
낡은 갈색 단추 하나
떨어지려나
툭,
하고
가을이려나
*시인의 말
난폭한 폭풍의 밤이다.
밖에 있으면 죽고, 안에 있으면 산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알량한 지붕과 벽 따위가
안과 밖의 경계라니,
삶과 죽음의 경계라니,
그래서 안이 더 무섭다.
그러나 매번 그렇지는 않다.
어찌 신만이 그 경계가 가소로우랴.
가끔은 인간도 가소로울 때가 있다.
요란한 천둥과 번뜩이는 번개가
짐승몰이 하듯 나를 겁주며 쫓는다.
그러나 오늘밤은 그것이 죄다 헛수고다.
나는 여기 알몸으로 고요히 누워있다.
보아라, 이것이 인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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