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달밤 - 김상철

마루안 2018. 10. 3. 19:17

 

 

달밤 - 김상철

-자석에 이끌리는 쇠꼽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나의 미생(未生)전,

내 아버지 어머니의 미생전,

아니 맨 처음 사람이 생겨나기 전부터

날이면 날마다 달은 중천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언덕이거나 벌판,

시냇가 또는 해변이거나

달빛이 억세게 내려 쪼이는 곳에서

태초 사람의 할아버지는 만들어졌습니다.

 

내 속엔

세포든 피알이든

몸에서 몸으로 이어 내려온

달이거나 달 그리는 무엇이 들어앉았습니다.

 

그러길래 이 밤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정다운,

그러면서도 잘 모르겠는

자석에 이끌리는 쇠꼽의 마음으로

중천의 달 아래를 소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집, 흙이 도톰한 마당에 대한 기억, 고두미

 

 

 

 

 

 

내 어머니의 일상 - 김상철

 

 

새벽5시 눈을 떠서 화장실을 다녀오다. 다시 누워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 7시에 일어나 집안 청소를 하고 엊저녁 남긴 밥과 김치, 고추튀김을 반찬으로 조식하다. 비타민제, 혈압약, 당뇨약 복용하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TV 아침연속극을 시청하다. 10시에 주민 오륙 명과 어울려 산행을 가다. 12시 귀가하여 조식과 동일한 메뉴로 중식하다. TV 시청하다 14시에 이웃집에 놀러가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다. 4시간 동안 500원을 잃다. 18시에 귀가하여 밥을 하고 김칫국을 끓여서 김치, 고추튀김, 절인 고추, 무말랭이 반찬으로 석식하다. TV 시청하다가 20시에 자리에 누워 한참 뒤척이다 잠이 들다.

 

이날 고스톱으로 500원 잃은 것 외에 소비활동 없었다. 휴대폰 벨이 한 번 울렸고 통화자는 읍내 사는 막내딸로 통화 내용은 아들네 보일러 배관 고장에 관한 것이었다.

기름보일러는 종일 가동되지 않았고 잠잘 땐 전기장판이 이용되었다.

밤중에 대문과 현관문이 잠겼고 낮에는 외출하는 동안 현관문이 잠겼다.

산행을 독촉하는 이웃 1인 외에 방문자 없었다.

 

 

 

 

# 김상철 시인은 1968년 충북 단양 출생으로 충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6년 <청주문학> 신인상을, 2005년 공무원문예대전 최우수상(희곡)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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