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노을 - 유병근
어둠에도 길이 있다지만
언덕에 버린 중절모 같은 어둠은
눈이 있어도 감 잡을 수 없는
저무는 한 시절의 바람에 쓰러진다
짐작할 수 없는 시간에 묻힌다
아는 날과 모르는 날이 그냥 헷갈린다
구름이 뜨고 지는 순간에도 바람은
어둠에 불려가는 봉분이 된다
허리 잘록한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철 거른 저녁새 무리 어둠을 날아간다
어둠을 지나 어둠 너머 허공을 지나
한때 흥얼거리던 노래가 사라진다
간이 밴 일기예보를 다시 듣는다
*시집, 까치똥, 도서출판 작가마을
떠돌이 한때 - 유병근
등을 좀 붙일 수 있는 곳
그걸 찾았다 발 뻗고 기댈 수 있는
어느 날은 먼 길에서 막막했다
돌아갈 자리만 생각했다 기다랗게
발 뻗어도 허물이 없는, 속옷 바람에도
마음 놓을 수 있는 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때론 입안이 텁텁했다
어느 날은 빗소리에 그냥 젖었다
소낙비였다 비는 칸막이을 적시고
발을 뻗었다 칸막이에 기댄 나를
밀어내었다 꽁지 뭉그러진 추운 새
순간 내 앞에 떨어지곤 했다
몸이 무겁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두엄 틈새는 흙벽이었다
먹장구름이 수상하게 밀려오고
흙벽이 조금씩 부스럭거렸다
*시인의 말
나를 불러준 쓸쓸함
나를 불러준 왕따
나를 불러준 하늬바람
캄캄한 구렁과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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