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애인 - 강신애
너를 사랑하는 일은
태양에 귀걸이를 다는 일
너를 이해하는 일은
샤론나무의 질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박동이 필요하다 석류를 위하여
더 많은 D, 더 많은 누수를 위하여
씀바귀 코스모스에게
한 생을
얇게 떠 있구나
짧아진 햇살 당겨
허리에 금빛 문신을 해줄게
시곗바늘 따윈 부러뜨릴게
누런 흙에 대한
모호한 애착,
모호한 기분으로 모호한 읊조림으로
천천히 흔들리다 가렴
가을이니까
씀바귀를 꺾다가
끈적한 것을 발견한다
세계가 흰 피로 이루어졌다니!
*시집, 당신을 꺼내도 되겠습니까, 문학의전당
파파피네 - 강신애
창조주가 천국의 바위를 던져 만든
폴리네시아 섬에는
세상에 없는 피조물이 살고 있지요
에메랄드 하늘과 바다
초록에 키스하기에
단 두 개의 성(性)만으로는 부족해
여자이면서 남자인 인간,
신을 쏙 빼닮은
파파피네를 만들었지요
파파피네는 가슴에 꽃목걸이 드리우고
파파피네는 출렁이는 둔부로
파파피네는 불가사의한 생을 춤추고 노래하지요
열대의 먼 여행길
배낭에서 슬픔이 묻어나오면
마나(mana)와 조개껍데기와 놀고 있는
파파피네를 찾으세요
플루메리아 피어난 머리카락
꽃무늬 프린트 치마를 펄럭이며 모래밭을 서성이는
파파피네를 포옹하면
신성한 힘과 아름다움이 무한 수렴되지요
파도처럼 나침반처럼
잃어버린 세계가 일렁이지요
# 강신애 시인은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불타는 기린>, <당신을 꺼내도 되겠습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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