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왜성 - 임봄
소란함이 싫어 어두워지는가
말을 잃어버린 입 속에 별들이 고이는가
빛의 체온들이 사위어가는 시간의 정점에서
박물관에 전시된 책 표지 얼룩처럼
영하의 체온으로도 노래 부를 수 있다니
긴 하루로 만들어진 짧은 일 년을 견디어
키 작은 어른이 되는 일
늙기도 전에 노인이 되어버린 아이의
굽은 등에 가만히 손을 대 보는 일
뒤통수가 예뻤던 눈을 믿다가
손바닥을 서슴없이 보여주던 어제를 믿다가
한 올 흰 머리카락을 믿게 된 지금
팽창도 수축도 하지 않는 회색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게 어울리지 않았지
착하다는 말이 칭찬인 줄 알았던 그 밤부터
몸속의 빙하는 자랐다
들판을 가득 메우던 쥐불놀이를 보던 저녁
그대로 뛰어 올라 별이 되고 싶었던 그때부터
굴뚝 위에 올라앉은 난장이로 살 운명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고해성사들
죽어가는 별 하나 품지도 못했는데
차가운 몸으로 온밤을 죽어야 하다니
*시집, 백색어사전, 장롱출판사
黑-5/ 임봄
한 평의 방에는
햇빛의 유언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외풍이 심한 북향의 방,
날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검은 머리칼,
상실의 흔적들을 나는 더 이상
오해하지 않기로 했다
오래된 가구들이 건네던 유서들과
숙면을 방해하던 무관심들 사이에서
당신은 인생의 반이 지났다며 사소하게 웃는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해골 속 뭉친 수심의 털 뭉치를 풀어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던 그 많은 밤들이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는 걸
수많은 눈물의 비석이 광장에 세워진 저녁
시베리아 북풍을 따라 온 황사가
창문 아래로 몸을 날리고 있다
*자서
빚진 자의 마음으로
7년을 백색에 갇혀 살았다.
부디 이 시집이
내 안에서 죽어간 수많은 당신과
내 삶의 파편을 위해 희생한 나무의
양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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