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반복해서 죽는 저녁 - 강시현

마루안 2018. 8. 30. 22:58

 

 

반복해서 죽는 저녁 - 강시현

 

 

부모의삶 을 베껴쓰며 사는 것은 비난 받는가

숨고르기가 여간 텁텁치 않던 차에

강폭이 좁아진 데로 나갔네

금물결에 해가 잘게 부서지며 산자락에 일렁거렸네

죽음은 일상이어서

멀리서 조용히 화장을 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고

흰빛이 나던 그의 턱수염을 오래 생각했네

원망 없이 쓸쓸한 일생은 권장할 만한 것인가

꽃에 파묻힌 사진 앞에서 절할 바에야

객지에서 보낸 그와의 짧은 옛일을 더듬었네

이상한 전염병이 돌고 애꿎은 짐승들이 묻히고

억울한 일생들이 방송이며 활자의 아가리로 먹물처럼 쏟아졌네

밭고랑에 흙먼지가 일고 논바닥이 마른 번개처럼 쩍쩍 갈라졌네

불도저가 연기를 내뿜고 트럭들이 줄지어 웅성거렸네

너도 나도 목숨 바치겠다는 또 무슨 선거철이 가까운지

이렇게 애국자가 많은 곳에서 불과 수십년 전에

나라와 이웃을 팔아넘기려는 훌륭한 상인들이

똥간의 구데기처럼 득실거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네

이래저래 피가 섞이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불편히 존중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절망이 저녁 속에서 무성했네

 

 

*시집, 태양의 외눈, 리토피아

 

 

 

 

 

 

새벽 청소부 - 강시현

 

 

당신의 삶이

거친 사내 혓바닥에서 내뱉어진 가래침처럼

새벽 뒷골목에 뒹굴어도

단 한 번도 안개 낀 하늘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쓸어라 쓸어버려라

대홍수로 삼켜버려진 못할지라도

 

가을 내리는 새벽거리에

떨어진 잎도 먹다 버린 빵 조각도

쓴맛만 남은 사람살이의 마지막 증거로

고토한 찌꺼기로 널브러져 있을지라도

 

쓸어라 쓸어버려라

이것저것 같이 섞여 버려지고 사라질

존대 받지 못하는 실존(實存)의 가벼운 무게들이여

 

어둠이 고양이처럼 낮게 몰래 들이칠 때면

룸살롱 네온사인은 안동의 짙은 안개로 자라고

과음에 전 늙은 여자의 노출은 지나친 욕정을 불러

세상에 흔한 머리 좋은 자여

너는 어느 곳에 버려질 쓰레기더냐

 

안동댐에 갇힌 죄수의 물이여

언제 네 뜻대로 한번 거세게 흘러

비겁한 안개의 허울을 벗을 작정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