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난한 풍경이 말하는 - 전성호

마루안 2018. 8. 20. 19:30

 

 

가난한 풍경이 말하는 - 전성호

 

 

내가 연 세상 내가 닫고 가야 한다

문제는 많은 문을 열었다는 것

풀잎 하나 스스로 흔들리지 않듯

오가는 모든 것 바람의 눈을 가졌나

한여름 뼈를 깎는 매미처럼

예리한 칼날 위를 넘어가는 가시들의

따가운 소리 그러나

빈 하늘의 적요는 깨어지지 않는다

어깨에 어깨를 의탁하며

지울 수 없는 바람의 눈으로

뼈를 깎는 귀들아 보아라

얇은 풍경의 잔떨림,

내가 뱉은 말들이 나를 꿰뚫고 있다

한 몸 먼지 되어 날리는

단순하게 여과된 공중에서

나는 나를 들을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한 탓하지 마라 가난한 네 뼈의 틈새를

 

 

*시집,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 실천문학사

 

 

 

 

 

 

성자의 눈을 닮고 싶은 - 전성호

–최해완

 

 

머슴의 아들 내 친구, 우리는

새콤하고 단 버찌 맛을 안다

눈시울의 긴 털까지 노스님을 닮았다

새벽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아비 목청만 높다 꽃이 핀 오동나무 사이로 해가 지면

빨리도 저녁잠을 챙기던 아이

산간벽촌에 군인으로 장기복무를 하다 지금은

그냥 절간에 앉아 있다 했던가

장작 패는 소리, 닭 울음 들리지 않던 울 너머

빈 쌀독 부엌은 어두웠다 햇빛 쉬었다

가는 마당에 빗방울들이 가끔 찾아와 물곬을 만들고

뒷간 똥통은 말라붙고

돼지우리가 강아지풀로 덮여 있었다

그 아이의 눈 비로소 분별을 놓게 하는 미얀마

이곳까지 찾아온 아이는 늙어가는 몸이 아프기나 하신가

아직도 적막한 아이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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