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여귀 ​- 정소슬

마루안 2018. 7. 3. 22:19

 

 

불여귀 ​- 정소슬


쩔쩔 끓는 한여름인데
그는 방에다 불을 수혈해야 산다
주워온 아카시아 둥치 도끼로 패 넣으며
손가락마다 박히는 연기에 눈물을 뺀다
그러던 그가 건네는 담배 받아 물고는
떠듬떠듬 말을 보낸다

호 혹시 풀과 머 먼지로 말아 만든 다 담배
피 피워봤냐고
구 군홧발에 짓이겨진 푸 풀포기 훔쳐 말리고
바 방다닥에 뒹구는 머 먼지 채워
자 장발장 채 책갈피 찢어
두 둘둘 말아 만든 다 담배.....

간신히 빼 문 창살 사이
장발장의 손모가지 뻐끔뻐끔 피어오르면
부모형제 죄다 찢기어 날고
그의 육신도 산산 찢어져
연기가 되어 날아다녔노라 했다

이제, 나이 가늠조차 어려운 화석 같은 몰골로
버려진 폐가에서 밤이슬 피하고
폐박스 모아 끼 때우며 사는 남자
피붙이 다 어디 사는지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고
친구 이름 하나 외지 못하는 그
자기 이름조차 기억 밖으로 도망치고 없다
다만, 불 꺼진 컴컴한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그의 수인번호만이
세끼 밥인 양 악착같이 기억해온 남자

수인번호 1960419


*시집, 사타구니가 가렵다, 도서출판 푸른고래

 

 




사타구니가 가렵다 - 정소슬


사타구니가 가렵다
사랑의 등고선이 접히는 그곳
이제 서로의 체온조차 짐이 된 그곳
도심 공터처럼
애증의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 그곳
마른 검불이 솟대처럼 서서
언제 올지도 모를 고도를 기다리는 그곳
등고선 지워진 지난 맹세들이
고도가 오고 있다며 잠꼬대를 해대는

그곳이 가렵다
너와 나 天命으로 잇댄
사타구니가 가렵다
둘 사이 접힌,

접혀
아등바등 구겨진 사랑이 가렵다


*고도Godot : 사무엘 베게트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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