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행방 - 김승종

마루안 2018. 7. 3. 22:03

 

 

행방 - 김승종

 

 

오랫동안 아무도 그가 떠돌이인지 몰랐네

겉멋들고 바람나 젊은 시절 출분해

거리에서 거리로 떠돌던 탕자

쉬임없이 떠돌아도 그래봤자 몇군데 도시를 그저,

가끔 그를 봐야하는 시장의 사람들은 그가 떠돌이인 줄 알게 되었어도

누구도 그를 미워하지도 반기지도

가여워하지도 비웃지도 않았지,

며칠을 전봇대 아래 쭈그리고 있거나

어디선가 만나 같이 흘러 들어온 미친 여자를 위해 구걸을 하여도

저마다 자신을 미워하고 사랑하며

가여워하고 비웃어야하니까

인생은 제멋대로 제멋으로 사는 거니까니,

까닭모른 채 버림받은 뒤 삯바느질하며

친정 근처 소읍에서 늙어가는 옛처의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에

같이 살자 사정하다 퇴짜맞았다는 소문 돌아도

사람들은 침 한번 삼키지 않았지

 

오늘밤 그가 이곳으로 왔다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걷는 듯 마는 듯

굽은 허리로 약간 기침을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슨 볼일보러 가는 듯이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가출 첫날 묵은 여관

요염한 붉은 등불 잘 보이는 다리 위로 불쑥

그가 왔다 옛처에 의지해 절룩이며

그 불빛 위로 떠올랐다 잦아드는 따뜻하고 깨끗한 방 한 칸

 

 

*시집, 머리가 또 가렵다, 시와시학사

 

 

 

 

 

 

日暮途遠의 꿈속 山寺 - 김승종

 

 

오르막길, 가늘은 뿌리 드러낸 우람한 나무들이 서로 머리를 묶고 늘어선

살아 꿈틀거리는 오솔길을

내려가듯 오른다

등뒤로 악악 해가 소리치며 지고

울다가 웃어서 생긴 똥구멍의 긴 수염 올올마다

주름진 반달이 목을 메며

산 아래 낡은 우물의 전설을 저마다 다른 음색으로 외운다

불길이 온몸의 구멍에서 치솟으며 불경을 쓰고

거대한 낚시바늘이 물려하면 추처럼 흔들리며 사라진다

그 너머서 이윽고 목어와 쇠종이 울면서

부처의 가부좌상이 멋적게 황금빛으로 떠오르는데

세상의 온갖 잡놈 잡년들이 일시에

억울하다 억울하다고 통곡하면서

그만 집어치우라며 행악을 부린다

 

 

 

 

# 김승종 시인은 1967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머리가 또 가렵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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