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쩌다 아주 가끔 - 류경무

마루안 2018. 6. 27. 22:33



어쩌다 아주 가끔 - 류경무



안다 다 안다 그럴 만도 하다,
비틀거리며 뒷간 가서


뭘 낳고 싶다기보다는 뭔가 바꾸고 싶은 게
분명한 심정으로 이게 아냐 아닌데


웅숭그리고 앉아서 딱딱하게 굳은 똥딱지
한 쪽씩 벗겨낼 때도 있겠다


이건 모두 죄 때문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편협한 이곳에
잘못 내려서이다 똥 한 덩이에 한 번씩


슬몃슬몃 근육을 놓아주면서 오늘은 좀더 색다르게
앞에서 뒤로 역근(逆筋)이나 하자 거꾸로 괄약근을 닦아 보기도 하겠지만,


넌 원래 포유류가 아니었어
네 별은 여기서 너무 멀다 어쩌다 이곳까지 왔니


사기나 치다가 달래나보다가
꼴린 항문 다 풀고 미적미적 걸어나오면


속시원하겠다 어쩌다 아주 가끔 항문 꼴리는 날이어서
뒷걸음치다 똥 밟는 기분이기도 하겠다



*시집, 양이나 말처럼,문학동네








추문(醜聞) - 류경무



1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모래알같이 많은 나날을 어쩌자고
겨우 연명하는 것인가


그때 고개를 넘을 때 따라오던
자꾸만 같이 가자고 보채던
여우를 따라갔어야 옳았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제부터 진지하게 살 거야 두고 봐
그럼 지금부터 밥값은 네가 평생 책임져라
어디 가서 감자탕이나 마시고 가지?


그네들은 내 등뼈를 사정없이 발라먹었다


2

나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꾐에도 빠지지 않았겠지
비릿한 입맞춤 때문에
우리는 이미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다


혹시 나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사는 것일까
오래된 칼을 벼려서
마지막 비수를 들이대기 위해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에게나
붙어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3

어쩌다보니 나는
망태를 들고 십 리 밖까지 걸어갔다 온 사람
광물을 져 나르는 사람이었다


기억하건데 소는 참 소 같은 사람
어쩌다보니 나는 소를 잘 모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끝에서 이 끝까지 오랫동안 달음박질한 사람


돌아보니 그건 단지 한 발자국이었고,


내가 몰랐던 것은 아무도 몰랐으므로
나는 나를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이 오래 묵은 소문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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