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아주 가끔 - 류경무
안다 다 안다 그럴 만도 하다,
비틀거리며 뒷간 가서
뭘 낳고 싶다기보다는 뭔가 바꾸고 싶은 게
분명한 심정으로 이게 아냐 아닌데
웅숭그리고 앉아서 딱딱하게 굳은 똥딱지
한 쪽씩 벗겨낼 때도 있겠다
이건 모두 죄 때문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편협한 이곳에
잘못 내려서이다 똥 한 덩이에 한 번씩
슬몃슬몃 근육을 놓아주면서 오늘은 좀더 색다르게
앞에서 뒤로 역근(逆筋)이나 하자 거꾸로 괄약근을 닦아 보기도 하겠지만,
넌 원래 포유류가 아니었어
네 별은 여기서 너무 멀다 어쩌다 이곳까지 왔니
사기나 치다가 달래나보다가
꼴린 항문 다 풀고 미적미적 걸어나오면
속시원하겠다 어쩌다 아주 가끔 항문 꼴리는 날이어서
뒷걸음치다 똥 밟는 기분이기도 하겠다
*시집, 양이나 말처럼,문학동네
추문(醜聞) - 류경무
1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모래알같이 많은 나날을 어쩌자고
겨우 연명하는 것인가
그때 고개를 넘을 때 따라오던
자꾸만 같이 가자고 보채던
여우를 따라갔어야 옳았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제부터 진지하게 살 거야 두고 봐
그럼 지금부터 밥값은 네가 평생 책임져라
어디 가서 감자탕이나 마시고 가지?
그네들은 내 등뼈를 사정없이 발라먹었다
2
나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꾐에도 빠지지 않았겠지
비릿한 입맞춤 때문에
우리는 이미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다
혹시 나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사는 것일까
오래된 칼을 벼려서
마지막 비수를 들이대기 위해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에게나
붙어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3
어쩌다보니 나는
망태를 들고 십 리 밖까지 걸어갔다 온 사람
광물을 져 나르는 사람이었다
기억하건데 소는 참 소 같은 사람
어쩌다보니 나는 소를 잘 모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끝에서 이 끝까지 오랫동안 달음박질한 사람
돌아보니 그건 단지 한 발자국이었고,
내가 몰랐던 것은 아무도 몰랐으므로
나는 나를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이 오래 묵은 소문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의 전술 - 전대호 (0) | 2018.06.27 |
---|---|
장마의 나날 - 허연 (0) | 2018.06.27 |
마음의 달 - 천양희 (0) | 2018.06.27 |
나는 가끔 자습을 이렇게 부르지 - 채풍묵 (0) | 2018.06.26 |
사랑, 때 묻은 껌 - 김이하 (0) | 2018.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