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자화상 - 김언

마루안 2018. 3. 24. 22:56



자화상 - 김언



보이나요 여기,
심장을 뚫고 나온 내 안테나
안테나가 세운 작은 공장들 도시들
모래 속을 떠다니는 물고기들
여기는 바람이 몰고 다니는 곳
아무것도 피지 않는 곳
저무는 하늘은 그때도
지금도 황토색이었습니다 당신,
이걸 두고 하늘이 내려앉는다고 한 건가요
황토색이 숨긴 이 푸른 집을 두고
희망이라 한 건가요 처음부터
잘못 그린 손톱달은 그럼 어쩌나요
거꾸로 박힌 이 기둥들은 그럼 어쩌나요
가장 끔찍했던 체위에서 우리는
오래오래 화석으로 박힙니다
뼈만 남은 사랑, 내 이마에는
지금도 당신 못이 박혀 있답니다
가슴에서는 지금도 그때도
쇳소리가 들린답니다 당신,
무덤 뒤에서도 우는 사람
죽어가면서도 나무를 붙드는 사람
오늘은 관 뚜껑에다 하루하루
무너지는 도시를 세울 생각입니다
당신, 저무는 하늘을 덮고 가는 사람
조그만 기억에도 바스러지는 사람
보이나요,
이게 내 얼굴입니다



*시집, 숨쉬는 무덤, 천년의시작








책을 덮고서 - 김언



겨우 연애 한 번 실패한 걸 가지고
내가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친구 몇 명 잃은 걸 가지고
내가 정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몇 년째 사람구실을 못한다고 해서
죽어야 한다면
죽었다고 한다면
지금 내 앞에 살아 있는 나는 뭔가
살아서 이렇게 떠들어대는 나는 뭐란 말인가
죽은 내가 떠든다고 해서
죽은 내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씩 죽음이 진짜처럼 들리는 걸 가지고
내가 진짜로 죽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나는 진짜로 죽었다
죽었었다
두꺼운 이 철학책이 따로 증명해주지 않아도
나는 지난 여름 진짜로 죽었고
죽었었고
죽었다고 지금은 내가 증언하고 있다
내가 요즘 이상한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이미 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겨우 연애 한 번 실패한 걸 가지고
내가 아니라면
이미 내가 아니라면
달라진 건 또 뭔가 뭐란 말인가
몹쓸 그년은 그대로 몹쓸 그년이다
덕분에 증오 몇 번 한 걸 가지고
내가 다시 일어설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겨우 죽음 몇 번 본 걸 가지고
내가 바뀔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