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치명 - 김산

마루안 2018. 3. 9. 21:51



치명 - 김산



푸른 저녁이 등의 짐을 잠재우는 시간으로 돌아가겠다.
고독의 밀실로 말하노니,
구름의 검은 조등이 맨발 아래 스멀거리는구나.
죄를 지은 사람과 죄를 벗은 사람 사이에서
분분이 포말 되는 겨울의 말로 이해하겠다.
섬이 떠다닌다. 한 섬 두 섬 세 섬 선한 양들을 부르듯.
섬은 별의 공동묘지. 저기 아래,
주검의 정박을 절체절명의 몸부림이라고 부르겠다.
어둠이 하얗다고 소년이 소리친다. 그것은 비석의 그림자를 본
늙은 매의 날갯짓이 전생을 파닥거리는 불온한 외침.
어린 송장이 관의 문을 열고 비로소 명멸하는 저녁,
잔디들이 일제히 일어나 향을 피우며 음복을 한다.
바람의 후레자식들이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라.
썩은 눈동자로 집을 잃은 별들이 뜨거운 손을 잡는다.
들개 한 마리가 앞발을 천천히 거두어 가슴으로 덮는다.


바람이 분다. 죽어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죽어야겠다



*김산 시집,  치명, 파란출판








기형도 박물관의 기형도 - 김산



폭풍의 언덕 위에 안개의 전문가가 바람의 집을 그린다. 바람은 그대 쪽으로 불고 숲으로 된 성벽 위로 가는 비 온다. 종이달과 나무공을 튀기며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이 추억을 경멸하는 어느 푸른 저녁이여, 여행자는 장밋빛 인생을 꿈꾸지만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홀린 사람이 되고 만다. 추악한 망토를 걸친 늙은 사람이 조치원을 지나며 죽은 구름을 불러 모은다. 도시의 눈이 사강리 포도밭 묘지 언덕길 위에서 집시의 시집을 중얼거린다. 집시의 시집 집시의 시집 집시의 시집 램프와 빵과 입속의 검은 잎이 나쁘게 말할 때까지. 물속의 사막은 소리의 뼈를 잃고 너무 큰 등받이 의자에 앉아 겨울 판화를 새긴다. 그날의 흔해 빠진 독서가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왔다. 나 빈집에 갇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위에 지난한 슬픔의 백야를 덧칠한다. 이것은 기억할 만한 너를 지나쳐야 했던 오래된 서적이다.


*추신. 위의 시에 나오는 기형도 시인의 시 제목이 몇 개인지 맞춰 보시오.






# 김산 시인은 197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2007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키키>, <치명>이 있다. <김산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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