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쓸쓸한 질문 - 권오표

마루안 2018. 3. 9. 21:33



쓸쓸한 질문 - 권오표



심야 극장에 갔다
주목 받지 못한 영화 속 한물 간 늙은 배우의 연기는 무료하고 공허하다
비 오는 아침 창가에 앉아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놓고 쓸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느 후미진 골목을 돌고 돌아 이곳에 유폐되어 있는가
하루하루가 낡은 구두 뒤축처럼 헐겁고 시시하다
일기를 썼으나 벌써 옛일이 되었다
바람에 진 젖은 잎이 눌러 붙은 빈 의자가 적막하다
꿈꾸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간밤에는 강가에 나가 꺼이꺼이 울다가 왔다
꿈은 또 다른 서러움의 고백임을 안다
옆구리부터 말라가는 수련잎이 청개구리를 힘겹게 떠받치고 있다
내일이 또 덧없으리라는 걸 예감한다
찻잔의 식은 커피처럼 꽃병의 꽃도 시들었다



*시집, 너무 멀지 않게, 모악








동백 - 권오표



한때,
누구나 한번쯤 돌개바람처럼 휘몰아쳐 온
치사량의 무모한 사랑
화롯불마냥 품지 않은 이 있으랴


먼 나라 공주의 방을 목숨 걸고 넘고 싶지 않았으랴


저물녘
사립문만 바라보다 돌아선 누이
동박새 따라 선운사 뒷그늘에 와 목 놓아 통곡하네


붉은 울음 뚝, 뚝,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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