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우나실 모래시계 - 주창윤

마루안 2018. 3. 8. 22:53

 

 

사우나실 모래시계 - 주창윤


피곤한 어제의 하루를 벗겨내기 위해서
사우나실은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찌그러진 바퀴들은 무거운 성기를 이끌고 들어와서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고
어젯밤의 구토도 땀을 빼며
내장을 비워낸다.
모래시계가 완전히 비워지는 십 분 동안
모두 다 낡은 육체의 배터리에 충전한다.
전능의 누구도 저렇듯 지친 영혼을 빠르게
회복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脫骨된 바퀴들은 마디마디 기름칠되고
스패너로 조여져서
하루 동안의 구원을 받은 후
다시 찌그러지고
구토하기 위해서
씩씩하게 밖으로 나간다.


*시집, 옷걸이에 걸린 羊, 문학과지성

 

 

 

 

 

 

사우나실로 가는 달마 - 주창윤

 

 

달마의 선방(禪房)도 들어서면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내 몸의 일부를 비워내는 것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다.

이마에 수건을 묶고 투쟁적으로 버티는 것이다.

사우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모든 자리는 이미 채워져서

앉을 공간이 없다.

祖師의 禪房도 여백이 없다.

나는 숨이 막혀 삼 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급하게 밖으로 나와

콜라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켠다.

 

 

 

 

*시인의 말

 

물과 바람이 '지는' 곳에서 봄이 열린다. 그 사실을 알지만. '지는' 곳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자꾸 머뭇거린다.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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