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콩이 구르는 이유 - 김시동

마루안 2018. 3. 8. 22:35

 

 

콩이 구르는 이유 - 김시동

 

 

아주 멀리 도망가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어른이 될 때까지 문 꽉 걸어 잠그고

문고리 부서지는 그날을 기다리는데

자랄수록 멀리 도망갈 궁리만 하는

콩들에게는 이유가 있어서이다

매끄러운 옷이고 둥글둥글한

몸이다 보니 멀리 굴러가기 좋다

야무지게 태어난 것을 감사히 생각하면서

내게도 삶이 있는 한

아무에게나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껏 멀리 굴러가

자수성가해서 새로운 살림 차리며

번식하고 싶은 것이

콩이 구르는 이유다

 

 

*시집, 눈물은 나의 연봉, 문학의전당

 

 

 

 

 

 

불혹 - 김시동

 

 

알람이 온몸으로 요동을 치면

혼이 퇴근해서 육체로 출근이다

동공 침대에 매일 출근하는 달

눈곱 생산하고 집으로 퇴근이다

새벽이 출근할 때

오장육부도 출근을 한다

아파트 갓등이 눈에 불을 켜고

막바지 철야 작업에 열중이다

별이 종종걸음으로 퇴근을 하고 있는데

안개는 벌써 출근해서 경계근무에 몰입이다

 

뼈를 갈아서 빛을 만드는 것을

어찌 해바라기들이 알까?

극한직업 삶을 책임지는 마음을 말이다

 

근육이 뭉치고 지압이 그립다

발이 역마살이니 동공은 쉬어가자고 데모다

가슴이 결제는 사절이다

내가 사라지면 구름이 몰려와

그 속에서 비틀거릴 해바라기들

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등하는 기름이 주식인 딱정벌레가 원망스럽고

작업복 역한 냄새가 싫다는 해바라기가 원망스럽다

연골이 울면서 현관문 열고 들어서는 순간

웃어야 하는 것이 불혹의 현실이다

 

 

 

 

# 김시동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2008년 <스토리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무궁화 상소문>, <눈물은 나의 연봉>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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