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도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른 적이 있다 - 유하

마루안 2017. 12. 5. 22:48



나도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른 적이 있다 - 유하

 
 

간교한 여우도
피를 빠는 흡혈박쥐도
치명적인 독을 가진 뱀도
자기의 애틋함을 전하려 애쓰는
누군가가 있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애틋함을 갖는 순간
간교함은 더욱 간교해지고
피는 더욱 진한 피냄새를 풍기며
독은 더욱 독한 독기를 품는다


나도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른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내게 깊이 취했던 시간이었다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열림원







 

길 위에서 말하다 - 유하

 


길 위에 서서 생각한다
무수한 길을 달리며, 한때
길에게서 참으로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찬미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온갖 엔진들이 내지르는 포효와
단단한 포도(鋪道) 같은 절망의 중심에 서서
나는 묻는다
나는 길로부터 진정 무엇을 배웠는가
길이 가르쳐준 진리와 법들은
왜 내 노래를 가두려 드는가


길은 질주하는 바퀴들에 오랫동안 단련되었다
바퀴는 길을 만들고
바퀴의 방법과 사고로 길을 길들였다


상상력이여,
꿈이여
희망이여
길들여진 길을 따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보이는 모든 길을 의심한다
길만이 길이 아니다
꽃은 향기로 나비의 길을 만들고
계절은 바람과 태양과 눈보라로
철새의 길을 만든다
진리와 법이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길을


도시와 국가로 향하는 감각의 고속도로여
나는 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버릴 것이다
나를 이끌었던 상상력의 바퀴들아
멈추어라
그리고 보이는 모든 길에서 이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