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벼랑 위의 사랑 - 차창룡

마루안 2017. 11. 29. 18:51



벼랑 위의 사랑 - 차창룡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시작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벼랑은 내 마음의 거주지,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부화 직전의 알처럼
벼랑은 위태롭고도 아름다워, 야윈 상록수 가지 붙잡고
날아올라라 나의 마음이여, 나의 부푼 가슴에 날개 있으니,


일촉즉발의 사랑이여, 세상은 온통 양귀비의 향기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신과 나는 벼랑에서 떨어졌고,
세상은 우리를 받쳐주지 않았다, 피가 튀는 사랑이여,
계곡은 태양이 끓는 용광로, 사랑은 그래도 녹지 않는구나.



버릇처럼 벼랑 위로 돌아왔지만 보이지 않게 무너지는 법,
평생 벼랑에서 살 수는 없어, 당신은 내 마음을 떠나고 있었다.
떠나는 이의 힘은 붙잡을수록 세지는 법인지,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끝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내 마음은 항상 낭떠러지였다, 어차피 죽을 용기도 없는 것들아,
벼랑은 암시랑도 않다는 표정으로 다투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시집, 벼랑 위의 사랑, 민음사

 


 




 
달 - 차창룡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간다


간다는 것은 작아진다는 것
간다는 것은 커진다는 것
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


시간은
어린 짐승이 크는 것을 바라보는 것
다 큰 짐승이
작아지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


시간만큼 무거운 것은 없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여서
시간을 들고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본이다


길 아닌 길을 지우며 우리는
오늘도 간다

 

 
 


# 차창룡 시인은 1966년 전남 곡성 출생으로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고 2010년 봄 20년이 넘은 문학질을 청산하고 출가를 해서 승려의 길을 걷고 있는 구도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시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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