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마루안 2016. 8. 3. 02:21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








당신의 운명- 송경동



어머니는 밤 기도를 드리고
나는 두 칸짜리 미닫이문 너머에서
바퀴벌레를 잡는다.


어머니의 구원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어머니는 한때 팥알을 씻어 절간엘 다녀왔다.
아카시아향 번지는 개척교회 돌계단도 올랐고
생활이 더 말라가는 말년엔
미사포를 넣고 성당엘 다닌다.


그런 어머니를 비꼬기도 했지만
난 어머니의 그 천연덕스러움이 좋다.
곤궁한 생활을 피게 해준다면
설탕이 아닌 사카린이면 어떻고
꿀 아닌 물엿이면 어떤가


어머니에게 절대적인 것은 생활이어서
바퀴벌레처럼 어두운 이 삶이 펴지지 않으면
저 신의 운명도 오래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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