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치마 - 문정희

마루안 2016. 6. 19. 19:32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바지 - 문정희

 


불끈하며 치밀어 오르는 듯한
만지면 터질 것 같은
바지 사이의 불알


남자는 치마보다 바지 입은 모습이 어울린다
아니 그래야만 알 수 있다
쏟아내는 그 정열의 느낌도
짧은 치마 입은 여자가 지나가면
바지의 그 사이 가운데는 혼자 요동친다


바지여서 멋지고
바지여서 사랑스러운
바지여서 내 사람이 되고 싶은
바지여서 만지고 싶은
오늘도 불끈하고 솟아 오른
그의 바지 사이로 눈이 간다
바지 입은 남자는 모두 내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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