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는 일이 아니라 그리워하는 일 - 백무산

마루안 2016. 6. 7. 23:40



사는 일이 아니라 그리워하는 일 - 백무산


 
이게 사는 일인가 돌아본다
언 땅이 녹으면 되리라
꽃이 피면 되리라
비바람 계절만 지나면 되리라
언제까지고 이게 사는 일인가 돌아본다


삶은 언제까지고 유보되고
삶은 그리움으로만 남고 우리는 사라진다


사는 일과 유보하며 사는 일
나와 나의 허구가 대칭을 이루며 산다


돌아보니
살았다 해야 하나


아, 산다는 말은
틀린 말
그리워하는 일이라고
할 말을



*시집, 길은 광야의 것이다, 창작과비평

 

 






꽃은 단 한 번만 핀다 - 백무산


 
물이 빗질처럼 풀리고
바람이 그를 시늉하며 가지런해지고
봄이 그 물결을 따라
흔들리며 환한 꽃들을 피우네


새 가지에 새 눈에
눈부시게 피었네


꽃은 피었다 지고
지고 또 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눈 같은 가지에
다시 피는 꽃은 없다
언제나 새 가지 새 눈에 꼭
한 번만 핀다네


지난 겨울을 피워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있어온 모든 계절을
생애를 다해 피워올린다네


언제나 지금 당장 모든 것을
꽃은 단 한 번만 핀다네





# 백무산 시인은 1954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1984년 <민중시> 1집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초심>, <길밖의 길>, <거대한 일상>, <길은 광야의 것이다>, <그 모든 가장자리> 등이 있다. 한국 시단의 대표적인 노동자 시인으로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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