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 박남준

마루안 2016. 5. 31. 00:10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 박남준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절정을 건너온 매화 꽃잎 바람에 휘날린다
향기로운 매화의 봄은 그새 가고 마는가
이제 내일의 시간이란
짧다 지천명의 나이
꽁꽁 얼음이 얼고 삼월 춘설
백발가를 불러주랴 눈발은 휘날리는데
뜰 앞의 진달래 꽃봉오리
초경의 가시내 젖멍울로 부풀었다
어떤 그리움으로
이렇게 성급히 마중 나왔더란 말이냐
이대로 연분홍 치마 드리울 수 있겠느냐
君不見, 눈 들어 차마 못 보겠다
네 붉은 머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랴
마음이 바람 곁을 맴돈다 어지럽다
연분홍 늙은 그리움아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문학








봄날은 갔네 - 박남준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 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 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렜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 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가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전남 영광 법성포 출생으로 전주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시인>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