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운명 - 천양희

마루안 2016. 1. 23. 00:31



운명 - 천양희



눈물로 된 몸을 가진 새가 있다
주둥이가 없어 먹이를 물 수 없는 새가 있다
발이 없어 지상에 내려오면 죽는 새가 있다


온몸이 가시로 된 나무가 있다
그늘에서만 사는 나무가 있다
햇빛을 받으면 죽는 나무가 있다


운명이란 누가 쓴
잔인한 자서전일까



*시집, 너무 많은 입, 창비


 






구멍 - 천양희



많은 것을 잃고도 몸무게가 늘었다
언제부터 비명이 몸속으로 드셨나
근심을 밥처럼 먹고 병을 벗 삼아
자란 비명들
많은 것을 잊고도 몸무게는 늘었다
언제부터 비명이 맘속으로 드셨나
우울을 우물처럼 마시고 불안을 벗 삼아
자란 비명들


잃었거나 잊은 것보다
더 큰 생의 구멍이 있을까 탓하지 말자





# 운명과 구멍이 묘하게 대비되면서도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나올 때부터 구멍에 빠진 내 운명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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