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만조의 바다 - 박영근

마루안 2014. 8. 13. 19:25



만조의 바다 - 박영근



너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먼 데 섬들이 파도에 쓸리던
겨울바다에서
차마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서서
노을에 홀로 취해가던
사내의 뒷모습을


너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할 말은 모두 소주병에 갇혀
소리도 없이 미쳐가던
술집 탁자에서
붙잡을 것이 없어 허공엔 듯 술을 붓던
사내의 떨리는 손을


불면의 뜨거운 이마에 떨어지던 파도소리
새벽술의 벌건 눈동자
물길에 누워 흘러가고 싶었다
바람과
햇살에
환하게 부풀어오르던
만조(滿潮)의 바다
물너울바다 웬 꽃들이 부시게 피어났던 것인지


너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바람이 텅 빈 갯벌을 쓸고 가던
겨울바다에서
갈대숲엔 듯 홀로 남아 떠돌던
사내의 발자국 소리와
젖어가던 네 얼굴을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창작과비평
 

 






저 꽃이 불편하다 - 박영근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
저 꽃덩어리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
불붙듯 피어나
속속잎까지 벌어지는 저것 앞에서 헐떡이다
몸뚱어리가 시체처럼 굳어지는 거
그거
밤새 술 마시며 너를 부르다
네가 오면 쌍소리에 발길질하는 거
비바람에 한꺼번에 떨어져 뒹구는 꽃떨기
그 빛바랜 입술에 침을 내뱉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흐느끼는 거


내 끝내 혼자 살려는 이유
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