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기다린다는 생각 - 송재학

마루안 2014. 8. 10. 19:51



기다린다는 생각 - 송재학



오래 벗어논 신발을 다시 신을 때
너가 벌써 와서 먼저 떠났다는 느낌
머문 시간 동안
좀씀바귀 노란색 기다림이 신발 밑창을 뚫고
한쪽 눈에 진물이 날 때까지 꽃피곤 했다
흔하디흔한 노랑이긴 하지만 저 꽃 아래
무엇과 다를 바 없는 무엇과 비교 못할
숨쉬기가 있다
기다림이기 전에 먼저 이정표이다
기다림이기 전에 너가 나 대신 떠난다는 것이다
텅 빈 허공이 생겨서
좀씀바귀마다 꽃피우게 하고
흔들리는 불빛의 手話를 구겨넣고 떠난다는 것이다
점점 작아지지만 더욱 분명해지는 불빛들



*송재학 시집, 기억들, 세계사








마흔 살 - 송재학



미나리와 비슷하게 습지 따라가거나
잎과 줄기를 삶아 먹기 때문에 나온
미나리아재비란 이름에는 마흔 살의 흠집이 먼저다
제 이름 없이 더부살이한다는 의심이 먼저다
다섯 장의 꽃잎이 노란 것도
식은 국물같이 떠먹기 쉬운
약간은 후줄근한 아재비란 촌수 탓이다
저 풀의 독성이란 언젠가 다시 켜보려는 붉은 알전구들
돌아갈 수 없는 열정이
저 풀을 이듬해에 또 솟구치도록 숙근성으로 진화시켰다
노란 꽃 찾는 꿀벌의 航跡도 명주나비 얼룩무늬도
미나리아재비 살림의 쓴맛 단맛
막무가내 번식하는 미나리아재비 군락을 지나간다면
일장춘몽 쓸개는 곰비임비 햇빛에 널어라
양지에 피어난 것이 어디 미나리아재비뿐이냐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고 누군가 다가오지도 않는
마흔 살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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