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온한 윤회 - 박남준

마루안 2012. 12. 30. 05:50

 

 

불온한 윤회 - 박남준

 

 

유곽을 찾듯 산을 건너왔으나 보이는 저 산으로 가면 모든 길의 지척은 첩첩의 빗장을 걸어 열리지 않는다 생애를 걸어가던 길이 있었어 그 길의 어디쯤 손짓하며 부르던 잘못 들었나 어디서부터

 

한때 이 산중에도 흥망이 있었지 멀리 불빛을 가둔 산문의 이쪽 허공 중에도 이를 곳이 있었는가 도처에 일어난 횡횡한 비명, 시위 같은 바람이 문 문을 걷어찬다 저 바람을 타고 나도 날아 올랐던가 문 밖에 떨어져내렸던가 문득 흔들고 가는 생각 한편을 뚫고 고요를 가르며 땅~ 벼락처럼 울리며 꽂히는 풍경 소리 어떤 경전도 어떤 법어보다도 나를 관통하는 그 꾸짖음

 

눈 두는 곳이 절벽이다 생각이 미치는 곳이 절벽이다 그 절벽 앞에서 무릎 꿇어보았는가 절벽의 발걸음 되돌려보았는가 건너오면 캄캄하도록 되짚어 건너야 할 강이 굽이굽이 놓인 절대적 이 불온한 윤회 제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문학동네

 

 

 

 

 

 

 

 

무서운 추억 - 박남준

 

 

 

 

 

 

 

노란 꽃 복수꽃을 보았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처절하다는 생각이 순간 떠오르는 것이지 복이 들어온다는데 그토록 눈부신 빛이 처절했다니 이면, 그래 눈부신 것 속에는 눈물겨움이 있지 그건 팽팽한 긴장이야 마른 풀잎들 사이 몸을 사린 채 어린 쑥들이 비쭉거렸다

 

쑥국 생각 한동안 그 쑥들 한 움큼 뿌리를 자르다가 이렇게 봄날을 먼저 기웃거리는 것을 이 여린 것을 먹고 살겠다니 잔인하단 생각 삶이 이다지 무서운 일이지 나물국 한 그릇도 마음에 걸리다니 세상이 너무 아득해진다

 

어찌 건널까 어서 길이 끝났으면 천길 벼랑 끝에 내몰렸다거나 막다른 건너갈 수 없는 절벽 앞에 이르렀으면 목을 빼고 주저앉는다거나 새처럼 수직 하강으로 아니라면 돌아가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아 지금 꿈이 아닌데 무섭다 왜 나는 이렇게 얽매이느냐

 

 

 

 

 

# 시인에게 내 마음을 들켜버렸다. 읽는 순간 딱 내 얘기다. 불온하다는 말이 왜 그렇게 다정하게 들렸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운명이란 걸 믿는다. 불온한 윤회로 고장난 채 와야 했던 이 행성은 나의 유배지다.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다신 오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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