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보자 - 문동만
술값은 아깝지 않은데 꽃 사는 돈은 아까운
체제에,
이 장마에 나는 부역하고 있다
시집은 치워지고 서점은 망해가고
술집은 번성하고 망하기를 반복하고
꽃집은 시드는 이 도시에서
시든 꽃들의 밤에 나는 동조하고 있다
어쩌나, 이렇게 비는 내리고 꽃도 술도 그리운데
꽃 들고 술을 마시랴
꽃에서는 소주 같은 시가 피고
취한 시의 대궁에선 꽃이 필까
오늘 밤은 긴 비에 시름겨운
시름겨운 꽃을 사보자
*시집, 구르는 잠, 반걸음
강화에 와서 - 문동만
들깻대를 베었다 베어지는 것들의 향이 깊었다
고구마 밭의 가지런함에 무릎 꿇어 뿌리의 안부를 묻는다
주워 갈 사람도 없는 산밤의 입을 벌려 깔깔한 말도 들어본다
꼬부랑 아낙은 -어여 집에 갑시다, 꼬부랑 남자는 -한 고랑만 더 죽이고 가세,
죽이다는 말도 생긋하게 숨을 쉰다
높지도 낮지도 그러나 다 알아듣는 말과 말 사이, 고랑과 고랑 사이,
다정한 간격을 손뼘으로 재본다
나는 더 깊이 저문 숲으로 들어가 몇 기의 무덤을 지나고
노란 조밭 속에 숨은 장끼의 고요를 훔친다
산밤이나 상수리나 으름 같은 것 훔친 것은 아니어서
떳떳한 식량들의 유구함을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식량만 지고 돌아올 것이다
고양이가 흰 배를 볕에 맡긴 채 낮잠을 자는 집
냄비에 산밤을 쪄서 방을 빌려준 주인댁 문을 두드린다
많이 아픈 사람이 오래 누웠다가 잠시 방을 비웠다는 피안에 눕는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변 여인숙 - 서규정 (0) | 2019.07.19 |
---|---|
병으로서의 디아스포라 - 정선 (0) | 2019.07.18 |
병 - 송재학 (0) | 2019.07.17 |
멸치 - 성윤석 (0) | 2019.07.17 |
일곱 살에 인생을 말하다 - 최명란 (0) | 2019.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