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멸치 - 성윤석

마루안 2019. 7. 17. 19:41



멸치 - 성윤석



봄꽃 다 떨어지고 오월 나무들은 바다와 같이
푸르름으로 마주 서고 공중화장실 거울을 보며,
야, 이 개새끼야 스스로에게
소리 지를 때 생아, 내 젖통 내 젖통 하며 무거운 멸치젓통을
들고 뛰어다니는 거구의 일일상회 여자처럼
생아,
메가리를 담은 종이 상자를 엇박자로 매어놓은
저 탱탱한 고무줄처럼 생아,
모든 약속들이 젓이 되어, 냄새마저 나지 않을 때
봄날의 간지러운 언약들이 다시 수만의 치어가 되는
꿈을 나는 꾸는구나 어느새 그 치어들 한 마리 한 마리
눈알들도 기억하고 있구나 생아,
고단함의 고무통에 비닐을 씌우고 하루 벌이로 주물럭
주물럭거리는 저 여자처럼
생아, 언제 어느 곳에서
내가 당신에게서 튀어 오르는 당신 생각들을 외면하며
방파제 등대에 기대어 서서 쓴 편지는 결코 보여주지 않으리



*시집, 멍게, 문학과지성








사람 - 성윤석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과 가졌던 비밀
이 생각나 동백이 진 것도 아닌데 한 번씩 얼굴이 붉어졌다
눈빛 하나라도
좋고 스치는 손가락과 손가락의 느낌이라도 좋다
가끔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자고 있는 내 얼굴을 한 번은 내려다보고 싶어졌지만
어떤 날 밤에서라도 웃고 있을 것 같아 그 모험은
손수건처럼 접어두었다 동굴을 찾아가 이름을 버리고
목놓아 울다 사라지고 싶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까
금니라도 빼서 춤추러 가고 싶은데
요즘은 춤추러 가는 사람들이 없다
어느새 긴 머리칼을 자르러 가는 사람은
헝클어진 존재를 잘라내고 혁명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가서 손톱을 소제하는 것은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걸 가끔 나는 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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