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옥 - 성백술
어두컴컴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셋방에는
하루종일 햇빛이 들지 않는다.
희뿌연한 방범 창살의 그림자
어두운 짐작만으로 하루의 시간을 가늠해보지만
아침이 오는지 밤이 오는지
두더쥐처럼 하루를 보내는 날은
흐릿한 형광 불빛에 두 눈이 침침하다
내 생은 어디까지 흘러왔는지
방콕의 세상은 너무도 고요해서
이 무덤 속 같은 침묵이 나를 미치게 해
계기판만으로 시계를 운행하는 건 지독한 혼란인데
나의 생체 시계는 사십 대 어느 봄을 통과하고 있는지
이웃집 담벼락 철조망 너머 활짝 핀 목련이
새떼가 되어 우주 밖으로 비행을 하고 있다
전세 삼천의 감옥에 갖힌
나의 육신, 나의 영혼, 나의 한계 그리고 나의 사랑
도데체 쥐꼬리만한 월급을 가지고는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 따라잡을 수 없고
평생을 바쳐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꿈인
지하의 사람들, 우물 안의 개구리들
태생의 가난과 굴레 벗어던질 수 없다
절망 같은 저 햇살, 꽃구경 다녀오던 날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나는 본다, 천장 가득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빛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언젠가 이 마음의 감옥에 살다 갔을
새색시와 아기의 고운 꿈, 아직도
천장 가득 야광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전세 삼천. 무한대의 우주로 뻗어가는
나의 감옥이여
*시집, 복숭아나무를 심다, 시와에세이
라면과 수제비 - 성백술
어린 시절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배급용 밀가루 반죽을 빚어
끼니를 때우곤 했던 수제비국처럼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도 나는
자취방에서 혼자 라면을 끓인다
식민지 난리통 속에서 허리가 굽도록
보리죽도 없어서 초근목피로 연명했다던 할머니
갈라진 손바닥 다 닳은 손끝으로 밭을 일궈도
평생 늙으신 것 외에 달아진 것이 없는 어머니
이제는 정말 알 것만 같다
옛날부터 밀가루나 감자는 구황작물이었다는데
있는 놈들은 간식이나 입맛으로 먹는 그것이
왜 오늘 나에게는 일용할 양식이며 주식이 되는지를
눈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던 수제비
라면 가닥처럼 늘어지는 긴 목숨으로
나는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서 사는가
살점을 저미는 분노가 튄다
뜨거운 밀가루 덩어리를 삼티면
진달래꽃처럼 되살아오는
할머니 어머니의 얼굴
그제나 이제나 달라진 거라곤 별반 없는 세상
식민과 자본의 아픈 역사가
거꾸로 모가지를 치받으며 거슬러온다
# 성백술 시인은 충북 영동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4년 <시에티카>로 등단했다. <복숭아나무를 심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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