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장 내부공사를 다시 함 - 한우진
찬물에 확!
담근 자지처럼 쪼그라든
창신동 골목
술이 새어나오는
새벽까지
국밥집
박수근 그림에서나
얼릉
포대기 질끈 동여맨 여자
연방, 업힌 것 누이쯤 되는 애에게
숟가락을 받쳤다거뒀다
연신, 자배기 속으로 눈은 떨어지다말다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연통의 입김
간판머리채를 쥐었다놓았다
유리창은 죽일 년 살릴 년
얼음판에 구르는 몇 개의
돌
칭얼거리는 돌
*시집, 지상제면소, 책나무출판사
최저임금 근로자 - 한우진
-죽음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산다는 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지. 내가 빌린 것들을 모조리 반납하는 것이지, 살아 있을 때 죽음은 의외로 빨리 오고, 죽음이 삶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짐짓 지루한 여행을 죽음이 막아주는 것이지, 죽음은 다른 형태의 다양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거라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 여행에 관한 루머조차도 듣지 못한다는 것일세. 이것은 헛소문이 아닐세. 빌려야만 하는 게 인생이고 반납하는 게 죽음이라는 것, 반납은 자동이라네. 수동으로 행하는 자가 혹간 있기는 하지만, 죽음의 여행지 어느 곳에도 대여점(貸與店)이란 없다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여행자는 다 창조자라네.
흙과 불을 가로질러 나뭇잎이 열린다.
너는 불알(火卵)을 공중의 사타구니에 매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발굽과 꿀을 던져준다.
대여지(貸與地)에서 오래도록 밀랍(蜜蠟)의 경작을 하라고.
흙과 불을 가로질러 샘이 번진다.
샘을 쫓아 달리던 말(言)의 뼈를 묻는 날이면
자작나무숲에 혀를 들킨 너는 분풀이를 해댄다.
자루 없는 괭이를 내 쪽으로 집어던진다.
불의 태엽이 잠겼다 풀릴 때까지
나는 봉새(封璽)된 샘을 열어젖히러 다닌다.
*視死猶視歸, 정두경鄭斗卿(1597~1673)
# 읽을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드는 시다. 압축과 생략과 비유가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자유자재다. 시인의 개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시가 단박에 이해 되지 않으나 두세 번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詩汁이 입안에 가득 고인다. 행간의 숨어 있는 싯구를 찾느라 저절로 천천히 읽게 만든다. 비속어로 엮은 고급시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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