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독한 죽음 - 김종필

마루안 2019. 4. 22. 21:31



고독한 죽음 - 김종필



술 처마시고 전화했을 때
세상 하루 살고
다 아는 것처럼 말라고 했잖아
그럴수록 악착으로 살아야 한다고
어차피 세상은 혼자라고


그냥 사니까 사는 거다
사는 일이
내 맘 같지가 않다고
누구도 죽일 것처럼 미워하지 말고
가엾게 볼 일이다


겪을수록 외로운 삶이었더냐
얼굴 보고 싶다고 할 때
보러 갈 것을
고향 떠난 쪽방살이
공장에 늙은 총각이 너뿐이더냐
얼마나 살았다고 서둘러 갔나


가방 하나 들고 집 나설 때
돈 많이 벌지 못하면
죽어도 돌아오지 않겠다던 다짐이
빠지지 않는 못이 될 줄이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는 만났나
엄마하고 살림은 합쳤더냐
막내가 왜 이리 빨리 왔냐고 혼났지
아버지 얼굴 새기고
엄마 품에서 오래오래 살아라



*시집, 쇳밥, 한티재








파지 - 김종필



트럭에 파지를 얼기설기 실었다
주인은 고물을 거두는 중이니 기다리라 하고
팽개칠 수도 없어
열린 문 앞에 쪼그려 앉았는데


고물 리어카를 끌고 온 노부부가
차에 실린 파지를 보며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는 말,


이만큼이면 막걸리는 사 먹는다
이 나이에 파지라도 줍는 게 다행이지


늙어가는 몸과
마른 파지는 가볍고
삶은
물에 푹 젖은 파지처럼 무겁다


그냥 버려지는 파지가 늙어가는 인생이라니,
차와 내 몸무게를 뺀
파지 값 9,100원을 경리직원에게 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인생이다






# 김종필 시인은 1965년 대구 출생으로 대구공업고등학교 졸업했다. 고교 시절 옥저문학동인회 활동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어둔 밤에도 장승은 눕지 않는다>, <쇳밥>이 있다. 현재 대구 성서공단에서 방화문을 만드는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유명 정치인과 이름이 같아 초설이란 필명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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