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에 설레다 - 안태현
한 열흘쯤
꽃 속에 갇혀 있으면 어떨까
창살 없는 구치소
묻지 않아도
비밀 얘기 술술 불어버리고는
향기처럼 가벼워지면 어떨까
꽃피는 사연
죄다 기록된 봄의 진술서에
서명 안 할 사람 어디 있겠는가
모른다고 해도
발뺌할 수 없는 일
벌 나비들이 쉼 없이 물어오는 제보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알리바이를 만들 수 없는
이런 봄날의
알몸들
*시집, 이달의 신간, 문학의전당
둘레길 - 안태현
하얀 꽃을 인 그대와 사이좋게 걷다가
토라진 듯 돌아서서 걸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몇 날 몇 시
어디서 만나자 약속한 일 없어도
필연처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릴없이 술자리에 가야 하고
사소한 것들 바라보는 일도 많은데
그렇게 애터지게 해찰하고서
땀이 송골송골 맺힌 그댈 만나
오이 하나 뚝 분질러 나누어 먹을 수 있을까
후생에 다시 만나고 싶으냔 그대 물음에
아직 답을 주지 못했는데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언덕을 지나
돌고 도는 길
골똘하게 물레질하던 어머니 곁에서
아주 먼 곳까지 이어지던 꿈길처럼
그대와 다시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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