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저녁이 없는 것처럼 - 문동만
천년을 살 것처럼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을 때
내가 처음으로 죽인 꿩이 떠올랐다
포란하다 다 품지 못하고 간 까투리였는지
하필 날개 달린 짐승이었을까
어떤 길도 무단횡단하는
보릿짚 타는 냄새가
돌아오지 않는 인기척 같기도
내가 처음으로 친 꿩 같기도 해서
차창을 열어 연기를 들였다
잠깐 눈 감으면 죽는 속도 속에서
이 냄새라도 오래 살려두고 싶었다
어떤 연기는 서러워서 맡고 싶지 않았고
어떤 겨울 저녁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보릿짚 타는 냄새만큼은 보내지 않겠다고
차창을 굳게 닫았으나
오지 않는 저녁이 없는 것처럼
가지 않는 당신도 없었다
*시집, 구르는 잠, 반걸음
담벼락 - 문동만
생각하네,
외사랑하던 연상의 여자를
착실한 형에게 소개시켜주고
주저앉아 들썩이던 젊은 날의 잔등을
제 그림자로 가려준 담벼락을
좋아하는 것들은 고백하기에 멀고
나는 소심했던 그림자
좋아했던 것들은 순식간에 반한 것들이 아니라
돌아와서도 보고 싶은 것들이었는데
담벼락은 깡통처럼 구겨진 나를 굽어보며
비밀을 지켰네
다시 살아도 그날처럼
순하게 흔들릴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주저앉아야 할 날들은 생겨났고
생겨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담벼락은
울었던 힘으로 여기까지 왔느냐고
등을 내주다 마른 이끼가 끼었는지
내 팽팽한 자책들을 견디느라
비스듬히 무너져 내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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