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날짜변경선 - 이설야

마루안 2019. 1. 18. 21:39



날짜변경선 - 이설야



바뀐 주소로 누군가 자꾸만 편지를 보낸다


이 나라에는 벌써 가을이 돌아서버렸다
매일 날짜 하나씩 까먹고도 지구가 돌아간다
돌고 돌아서 내가 나에게 다시 도착한다


지금 광장에서 춤추는 소녀는 어제 왔지만
나는 내일 소녀를 만날 것이다
만년 전 달려오던 별빛이 내 머리 위를 통과해갔다
그래서 오늘은 너와 헤어졌다


검은 재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매일 무릎이 까진다


나에게 도착한 미래가
어제 아프다고 전화를 했다


그래,
이제 이 나라에서 입력한 날짜들을 모두 변경하기로 하자
휙휙, 나무들이 날아가고
섬들이 날아가고, 낙엽이 빗방울처럼 날아가고
날아가고, 날아가는 것들
뒤바뀐 날짜를 버리기로 하자
버리고 버려서
가슴속엔 새로운 정부를
모든 경계선을 지워가며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창비








삼백다섯 개의 그림자를 밟고 지나가는 - 이설야



가자지구에 연일 폭탄이 떨어지고
아이들은 죽은 엄마의 배 속에서 태어난다


나라에 슬픔이 클 때
대통령은 언제나 해외 순방 중이고
수잠 자는 마을마다 흉흉한 소문이 질병처럼 번질 때
대통령은 겨울에도 여름휴가 중이다
의원들은 마른번개를 베고 자면서 회의한다
회의하면서 잠을 잔다


삼백다섯 번째 죽은 아이가 엄마 품으로 돌아온
오늘은 기쁜 생일날
자궁이 다시 열리고 아이가 새로 태어난 날


새들의 날개에 불을 붙인다
불이 붙은 새들은 더이상 날지 못한다
죽은 새를 하늘에 던지며
개미의 긴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 혁명가의 붉은 눈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들이 지나간다
붉은 화약고가 거꾸로 날아간다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검게 타 죽는다
죽어서도 매일 또 죽는다


서둘러 무기를 파는 하나님
팔레스타인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서로 달라
하늘에는 붉은 화약 냄새
심장이 타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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