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아야한다 - 박용하
아직도 바람이 불고
새는 난다
그리고 내 내부는 화염에 불타네
비웃지 마라
잘난 체하는 인간들이
삶의 심연에 이르는 걸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
불행하게 태어나
착하게, 그래서 힘들게 살아간 사람들에게서
나도 희망을 배웠지
물론 나도 안다
삶이란 게 무엇보다도 잔인하다는 것을
그리고 내 내부는 하염없이 흔들린다
나도, 단 한 명의 사람이
지구를 배반하지 않는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계속 살아야 한다
*시집,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문학과지성
살고 싶다! - 박용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면
찢어진 마음이 비 맞고 있다는 슬픔
슬픔이 술푼 아침처럼 취해 있는
11월의 생 앞에
나, 대가리에 다이너마이트를 친친 감고
터지고 싶다
살고 싶다란 말보다
죽고 싶다란 이 한 몸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마음은 어디서 괴로워했을까
마음의 궁핍이 죽음을 눈 내릴까.....
살아서, 못 견디게 살아서
이 눈부신 지옥을
20세기말을 살아버리자!
그럴 때마다
내가 지쳐 있다는 한 생각
이제 피로가 겹친다는 기쁨
쏟아지는 낙엽비 맞으며
늙지 않을 것 같았던
늙을 즐거움도 없을 것 같았던
스무 살처럼
나, 살고 싶다!
# 박용하 시인은 1963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강원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 <영혼의 북쪽>, <見者견자>, <한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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