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탑골 공원에서 노인들을 보다 - 정병근

마루안 2018. 9. 27. 19:46



탑골 공원에서 노인들을 보다 - 정병근



그 누구도 주름의 감옥을 탈출할 수 없다
독방에 갇힌 소년이 울고 있다
발버둥칠수록 밖에서 잠긴
세월의 문은 더 완강하다


이젠 정말 막다른 골목이다


믿어지지 않는 듯, 지친 소년은
천정을 쳐다보며 두런두런 혼잣말을 한다
텅 빈 목소리로 通房(통방)을 한다


종신형의 형기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노인 하나 호주머니 속,
너무 만져서 보풀보풀 일어난 길을 꺼내어
손으로 몇 번씩 문질러 펴놓고
잠을 잔다


돌아가고 싶다
딱 한 번만 더 살고 싶다
호리병 속의 소년이 울고 있다



*시집, 오래전에 죽은 적이 있다. 천년의시작








노을 - 정병근



내가 죽인 하찮은 목숨들이
거기 황금의 궁전을 지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해 보아라 네 죄가 없느냐


이윽고, 하루를 다 服務(복무)한 태양이
황금의 궁전 안으로 들어오자
그들이 바쁘게 물을 붓고 걸레질을 했다


한 쪽에서는,
오늘밤 지상의 어둠을 지킬
별들을 호명하고 있었다


무수한 발과 날개들이 붐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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